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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복으로 가는 길
본문 시편 32:1~32:11
설교자 이규현 설교일 2014-03-14

제목 : 회복으로 가는 길
본문 : 시편 32:1-11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우리는 모두 회복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이후, 우리 모두는 망가져있습니다. 우리의 상태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정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싶은데, 핸들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삶은 다른 쪽으로 펼쳐지면서 사고가 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가다 보면, 내가 가고 싶은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가게 되고, 때로는 길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예전에는 라디오를 쓰다가 여러 번 떨어뜨리다 보면, 라디오가 잘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은 죄의 결과로 오는 아픔과 고통, 고뇌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3절에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뼈’라고 기록되어있지만,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존재 자체가 쇠하였다는 의미입니다.
4절에 보면,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을 때,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는 시편 51편과 함께, 밧세바 사건으로 인한 다윗의 회개의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난 이후, 얼마나 심각하게 사투(死鬪)를 벌였는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4절에 보면,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완전히 바싹 타들어가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소진(消盡)되어 드러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순간도 평안을 누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죄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다른 것은 조금 미루고서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죄의 문제는 적당하게 다루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죄의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삶에 고통을 줍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모든 것을 갖추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복’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디에도 행복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행복이 옵니다.

본문의 표현을 보면, 다윗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환자와 같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병명도 알 수 없고, 불안을 느끼는 원인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답답합니다. 무엇을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치유를 위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죄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먼저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문제를 먼저 다룬 후에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병 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죄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치유사역을 하실 때에 병이 낫기를 원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2,5, 막 2:5,9, 눅 5:20, 7:48). 예수님은 병을 다루시기 전에 죄를 다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병 자체보다 죄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병이 죄로부터 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근원적으로 가면, 우리의 삶에 고통과 절망 등이 찾아온 원인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는 우리의 삶에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끼칩니다. 죄는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겪었던 고통은 종합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3중 고통, 즉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 영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종일 신음하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고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영적인 문제이지만, 우리의 삶에 총체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죄는 우리의 삶 전체를 깨뜨립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줍니다. 삶의 전반에 고통을 주는 요인이 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정상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학생이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죄 문제는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가족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죄 문제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사람에게 육체적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죄를 어떤 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부분적인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죄는 우리의 삶의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주고 파괴하고 깨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문제를 깊이 예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죄 문제는 우리의 육체의 문제에 영향을 끼칩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죄 문제를 해결할 때, 육체적인 병이 낫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 않았는데,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니 병이 깨끗이 낫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시므로 병자를 낫게 하신 일을 통해서도 죄의 문제가 선결(先決)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은 채 육체의 병이 낫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육체만 건강한 것은 영적으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병이 찾아오는 것의 원인이 죄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적 문제에 있어서는 더 분명합니다. 죄 문제는 정신적 문제를 초래합니다. 죄 문제로 인해 우울증이나 다양한 정신적 질병이 찾아옵니다.
죄 문제는 마음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상처를 잘 받는 이유도 죄 때문입니다. 지독한 자존심이나 열등감 등에 계속 이끌려가는 것은 죄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될 때,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속에 죄 문제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사업에 실패한 것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과도한 욕심과 방종하는 삶, 무절제한 삶,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 삶, 자신도 모르게 말씀에 불순종했던 삶이라는 요인이 숨어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자신만 알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방만(放漫)하게 깊이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죄는 뿌리의 문제입니다.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작용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의학으로 풀 수 없는 병들이 많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내게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합니다. 이것을 의학적인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문제와 얽혀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질병, 실패 등 우리의 삶의 무너진 모든 영역 안에서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고 깨어지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질병이 무엇입니까? 질병은 균형이 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균형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뒤틀립니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바르게 돌려놓는 작업을 하기 전에는 어떤 것도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 속에서는 다른 것을 아무리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근원적인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기울어집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표피적인 접근을 많이 합니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문제를 다루지 않고, 다른 부분을 다루려고 합니다.
상담, 상처 치유, 각종 가정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죄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가 됩니다. 죄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다루기보다 다른 접근을 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죄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싫습니다. 거북스럽습니다. 그래서 멀리하게 됩니다.

죄를 다루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덮어둔 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술 받아야 할 환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술이 힘드니까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간단히 처방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깊이 숨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드러내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죄를 덮어둔 채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반복되는 악순환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우리의 삶에 악순환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반복해서 고통을 주고, 우리를 실패하게 하고, 무너지게 하는 요인들 안에 있는 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본문에서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모든 요인은 단 하나, 죄 문제 때문입니다.
해결방법은 간단합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있는 대로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숨기거나 부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죄로 인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기준 자체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죄가 죄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아무도 죄를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주 교묘하게 다른 단어로 바꿉니다.
다윗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숨겼습니다. 1년 정도의 동안 죄를 숨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자복(自服)합니다. 더 이상 죄를 숨기지 않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 원전(元典)을 보면, 5절 한 구절에 ‘내가’라는 말이 아홉 번이나 언급됩니다. 이것은 죄를 회개하는 데 있어서 참 중요한 태도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죄를 희석시키려고 합니다. 죄에 대해 변명합니다. 우리는 그런 면이 발달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미화(美化)하려고, 최소화(minimize)하고, 전가(轉嫁)하고, 방어하는 데 능란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거, 애매하게 둘러서 말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여호와께 정확하게 아뢰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회개는 죄를 숨기지 않고, 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회개는 세척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성이 있는 것을 오래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영혼은 죄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어둠 가운데서 지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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