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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약속
본문 베드로후서 1:3~1:11
설교자 김기석 설교일 2014-03-16

위대한 약속
벧후1:3-11
(2014/3/16, 사순절 둘째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 안내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얼마나 발전하셨습니까? 얼마나 더 깊어지셨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한 느낌이 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발전하라고, 더 깊어지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에 적응하며 사느라 우리는 길을 가는 존재임을 잊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는 <여인숙>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시인은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고, 그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까닭이 무엇일까요? 모든 손님은 우리를 인도하라며 위에서 보낸 안내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내자가 쓴 맛을 안겨줄 수도 있고, 단 맛을 안겨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일 때 비애는 줄고, 지혜는 깊어질 겁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3)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미래 시제가 아니라 완료 시제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까닭을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물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께 속한 탁월함을 체현하며 사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선물인 동시에 과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마6:25, 33)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는 구해야 할 것의 우선순위를 뒤바꾼 채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모든 무거움은 이러한 뒤바뀜에서 초래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신앙 훈련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누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 속에 내포된 뜻은 우리가 더 이상 정욕에 이끌리다가 부패해버리는 사람 곧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품성에 참여한다는 말을 우리가 신적 존재로 변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과 깊이 접속된 존재로 산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이런 위대한 약속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한 치열한 노력입니다. 5절과 10절에 나오는 '열성을 더하여', '더욱 더 힘써서'라는 구절이 가리키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개신교에 가장 부족한 것이 '수행' 혹은 '훈련'(discipline)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치열한 자기 닦음의 과정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말이 곡해되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을 마치 인간의 공로에 대한 보상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위대한 약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생활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것을 삶 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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