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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
본문 사도행전 21:37~22:16
설교자 석기현 설교일 2014-03-16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
사도행전 21장 37절 – 22장 16절
석기현 담임목사
  '변명' 하면 보통 우리는 '자신의 구차한 입장에 대한 해명'이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즉 무언가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든지, 혹은 무언가 남의 오해를 받을 만한 사건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변명'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변명을 하는 쪽은 그것을 듣는 사람 앞에서 수세의 처지에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상대방 앞에서 당당한 자세로 변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서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청년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키고 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거기서 자신의 입장을 변명했던 연설의 내용을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책으로 쓴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수백 명의 배심원들 앞에서 아주 당당하게, 거의 거만하게 보일 만큼 도도한 자세로 자기변명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가 고발당한 죄목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재판정에서 조금만 숙이고 들어가도 사형까지 당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소크라테스의 그런 고자세가 배심원들의 눈에 아니꼽게 보여 사약까지 받게 되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변명'이라기보다는 아예 '변호'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할 만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 역시 그와 같은 '변호 같은 변명'을 하게 되었던 장면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22장 1절에 나오는 "변명"이란 헬라어로 '아폴로기아'(apologia)라는 단어인데, 바로 오늘날 'apology'(사과, 변명, 해명, 변호)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며 신학에서 쓰는 '변증학'이라는 용어도 여기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책에서는 'excuse'(변명)보다는 'defense'(변호)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즉 이하에 이어지는 바울의 "변명"은 자신의 구차한 입장을 감싸기 위한 옹색한 변명이 아니라, 자기를 정죄하고 죽이려 하는 자들 앞에서 자기가 옳음을 스스로 변증하는, 지극히 당당한 변호인 것입니다.

  그런 변명을 하게 된 상황은 21장 37절부터 4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군병에게 체포된 후에도 계속 따라오면서 '당장 죽이자'고 난리였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그를 로마군의 영내로 일단 피신시키려 했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 군중들에게 한마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천부장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 말을 아는" 사실에 놀랐는데, 그것은 지금 자기가 체포한 사람이 어떤 천박한 말썽꾼이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은 지식인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천부장은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킨... 애굽인이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애굽에서는 헬라어를 쓰고 있었는데, 이 시점으로부터 몇 년 전에 한 애굽인이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군에 의하여 진압당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당하고 말았는데, 정작 주동자인 애굽인은 도망을 쳤고 그때까지 체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유대인들 역시 그 애굽인에 대하여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것을 보고서 혹 그가 바로 그 애굽인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애굽인이 아니라 "유대인"인 것과 또한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 즉 정통 헬라문화의 물을 먹고 자란 지성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천부장은 그로 하여금 유대인들 앞에서 발언하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군병에 둘러싸여 올라가던 "층계"는 이제 청중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연단이 되었고, 그 군병들은 바울을 보호하는 경호원들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절호의 기회에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실상 '자신을 변명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호'하는 전도였습니다.

  이 시간 저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 기독신자의 복음전도가 어떻게 하면 그처럼 진실하고도 강력한 '예수 변호'가 될 수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진실한 복음전파는 전도자 본인 역시 원래는 하나님 앞에서 진노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2장 1절로부터 5절에 "1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4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군대 천부장에게는 헬라어로 말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 방언"으로 말했는데, 이것은 히브리어와 거의 비슷한 아람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시 유대인들의 일상언어였습니다.
  바울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군중들은 "더욱 종용하게" 즉 조용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바울과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즉 헬라화 된 유대인들은 대부분 히브리어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주후 1세기 경 저명한 유대인 학자로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필로(Philo)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모세오경에 대하여 상세한 주석까지 썼으면서도 정작 모세오경을 히브리 원어로는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의외로 히브리 방언으로 말을 시작하자 청중들은 단번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첫마디인 "부형들아"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아버지들과 형제들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들'이란 무슨 혈연적인 뜻에서 한 말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연로한 노인들을 높이 받들어 부를 때 쓰던 존칭이었습니다.
  즉 여기서도 바울은 자신이 유대적 전통에 익숙한 사람임을 또 한 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후 사도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기의 "변명하는 말"을 시작했는데, 먼저 자신의 출생배경부터 설명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는 안디옥으루부터 조금 더 북서쪽에 있는 소아시아의 도시로서 상업이 번창했고 헬라 철학과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출생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당시 세계의 가장 최신 학문을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또한 "유대인으로" 태어난 까닭에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이 성에서 자라" 즉 예루살렘으로 이사 온 후에는 저 유명한 "가말리엘"이라는 랍비의 문하에서 "엄한 교훈" 즉 최고의 율법 교육까지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의 인간적 배경이란 문자 그대로 최고 학부를 졸업한 수재였으며 당대 유대 사회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어릴 때부터 철저히 배워온 유대교에 대한 열정에 불탔던 까닭에 자신 역시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가 되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와 같은 열심이 자신으로 하여금 한때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데에 앞장서도록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라는 말은 자기가 회심하기 전에는 기독교라는 새 도가 유대교의 적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도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고 결박하고 옥에 넘기는" 일에 그야말로 발 벗고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열심이었는가 하면,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고 체포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산헤드린 공회가 발행해 준 영장을 가지고 이미 기독교인들이 많이 피신해 있던 다메섹까지 멀리 원정을 가서 체포하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이런 개인적인 과거사를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동기나, 자기가 옛날 기독교인을 얼마나 싫어하고 죽이려 했는지 그 이유나 둘 다 똑같은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자기를 죽이겠다고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의 마음속에서 바울은 과거에 기독교가 유대교의 진리를 대항하는 이단이라고 여기고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신네들의 심정을 내가 잘 안다. 나도 옛날에는 바로 당신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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