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설교

제목 복음 앞에서 떨다
본문 시편 29:1~29:11
설교자 김영봉 설교일 2014-03-16


1.

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신에 대한 생각과 믿음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 사회의 공통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아버지상'(a father image)에 대한 욕구로 인해 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같은 사람은 '이상적 인간'(a idealized person)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로 인해 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의존에 대한 욕구'(desire for dependence)로 인해 신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는 슐라이에르마하(Friedrich Schleiermacher) 같은 학자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몇 개의 예입니다. 그 외에도 그동안 수 많은 이론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동의를 얻어낸 이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학(Religious Studies)의 최근 추세는 종교의 기원 문제를 덮어 놓고 종교 현상을 다루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의 뿌리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백년 동안의 연구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더 이상 노력해 보아야 헛수고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종교학자들이 집요하게 외면하고 부정하는 단순하고 명쾌한 답이 있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어떤 욕구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신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답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답입니다. 학자들은 이 대답이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해결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왔습니다. 지난 2백년 동안 그들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려다가 결국 포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신에 대한 믿음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서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것을 잠시 '신'으로 바꾸어 읽어 보겠습니다.

신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신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신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롬 1:19-20)

의역 성경 <메시지>(The Message)를 펴낸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이 구절 뜻을 더 명료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신이 실재하신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근본 사실입니다. 그저 눈을 떠 보기만 해도 보이지 않습니까! 신이 창조하신 것을 찬찬히 그리고 유심히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언제나, 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를테면, 그분의 영원한 능력이나 신성의 신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신에 대한 믿음은 두 가지의 원인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첫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자신의 흔적을 피조 세계 안에 흩뿌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면 작가의 싸인도 보이고 특징이 보이듯, 피조 세계 안에 신의 싸인들이 숨어 있고 그의 성품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도 기억할만한 말씀이 나옵니다.

신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4:6)

세상 모든 만물에 신이 있다고 믿는 '범신론'(pantheism)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시계공처럼 우주를 만들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운행 안에서 그리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역사 안에서 신의 존재를 알만한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둘째, 인간의 마음 안에 신을 알아 볼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구절은 개역개정으로 읽습니다.

신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신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찬히 그리고 주의깊게 자연과 역사를 관찰하면 신의 흔적이 보이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에 대한 싸인이 매우 단편적이고 모호합니다. 그래서 싸인에 대한 해석과 결론이 다 각각입니다. 그것은 마치 독수리 그림의 500 피스짜리 퍼즐 조각 몇 개를 발견한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퍼즐 조각 몇 개를 이리 저리 맞추어 보고는, 어떤 사람은 물고기처럼 생겼다고 추측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처럼 생겼다고 추측합니다. 그것처럼, 피조 세계와 인간 세상에 숨어 있는 신의 싸인을 발견하고는 어떤 사람은 모든 물질에 신이 붙어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여러 신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물론, 참된 신은 오직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유교나 불교같이 체계화된 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하늘님'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이면 깨끗이 목욕재개하고 정갈한 물 한 그릇 떠 놓고 하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그 하늘님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 종교가 중국 땅에 들어가기 전에 중국인들은 '상제'(上帝, Shang Ti)라는 초월자를 믿었습니다. '황제'보다 높아서 '상제'입니다. 상제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제각기 생각이 달랐지만, 그런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같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든, 초월자 혹은 창조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가 인정합니다. 다만, 그 창조자에 대한 생각이 다 각각이어서 문제입니다.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에 처음 교회 다니기 시작한 우리 교회 교우가 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에는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지만,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교회에 나간 것입니다. 누구의 전도도 받지 않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참 흥미롭습니다. 부부가 합의하기를, "뭔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확인이나 해 보자"고 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까지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연과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싸인이 보이게 되어 있으며, 그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묻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경배하고 섬길만한 신은 오직 한 분 뿐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신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으며 온 우주의 운행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 신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당신의 모습의 일부를 드러내셨고 당신의 뜻을 알려 주셨셨습니다. 그것을 '계시'(reve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그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계시조차 충분하지 않아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주 창조주를 우상으로 변개시키고 신의 뜻을 왜곡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창조주에 대해 더 이상의 계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
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는 신'(God with us)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이며 초월자인 그 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분의 인격, 그분의 성품, 그분의 말씀, 그분의 행적, 그분의 죽음, 그분의 부활, 그분의 승천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성령을 통해 그분이 하고 계신 일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신에 대해 부족함 없이 드러내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신을 계시하신 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답합니다. 인류가 그동안 짐작하여 믿어오던 신이 그분을 통해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인간은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은 심각한 한계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충분할 정도로 신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한 설교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그는 아테네 시를 둘러본 소감을 말하면서 이렇게 설교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행 17:22-23)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이유는 그분을 통해 알지 못하고 섬겼던 신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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