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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본문 에베소서 4:13~4:16
설교자 이현옥 설교일 2014-03-16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에베소서 4:13-16)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

    이 세상에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것을 가톨릭교회(the Catholic Church)라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라고 하니까 천주교회를 연상하는데, 아니다. 가톨릭이란 말은 하나의 우주적 교회란 뜻으로 천주교회는 정확히 표현하면 ‘로마 가톨릭교회’입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모두 가톨릭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교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교회는 하나입니다.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교회 안에 많은 교파 교회들이 있는데, 그 성격들은 다 다릅니다. 이미지도 다 다릅니다. 장로교회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요? 좀 무뚝뚝한 느낌이 들죠? 반면에 순복음교회하면? 좀 요란한 느낌이 듭니다. 성공회하면 사회참여, 사회 운동하는 이들이 연상됩니다. 또, 강남교회, 강북 교회란 단어도 느낌이 각각 다 다릅니다.

     내가 20년 전, 왕십리에 부임했을 때 어떤 분이 내게 그러더라고요. ‘목사님은 강남 목사 같아요.’ 그게 칭찬인지 욕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세련됐다는 칭찬 같기도 하고, 제비 같다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세월이 흘러가니 그게 다 소용 없더라고요. 나는 지금 왕십리 목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암튼 교단이나 교회를 말하면 모두 제각각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 왕십리중앙교회, 왕중교회 하면 뭐가 생각날까요? 전도 열심? 사회 참여? 신비주의? 지성, ...? 글쎄 ... 내가 느끼기에도, 밖에서 여러분들에게 들은 말로도 왕중교회 하면 따뜻함이 생각납니다. 포근한 교회, 가족 같은 서민 교회 말입니다.

 

    2.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우리 왕중교회의 특징, 그 모습은 뭘까요? 왕십리중앙교회 교인이다 할 것 같으면 적어도 어떤 모습이 보여야 하는 걸까요? 한 목사가 20년을 목회해 왔다면 그 칼라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요?

    어차피 현대 시대는 교회도 선택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자신에게 은혜가 되는 교회, 그런 성도의 모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왕십리중앙교회의 모습, 성도는 어떤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요?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우리 교회만이 갖고 있는 신앙공동체의 모습, 왕중 성도의 성숙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중에 3가지 모습, 3가지 키를 찾았습니다. 그런 감동을 주님께서 몇 해 전부터 주셨습니다. 아니 이건 평생 나의 목회 소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동! 우리 인간의 언어 중에 감동이란 말만한 역동적인 단어가 없습니다. 감동(感動), 느낄 감(感), 마음이 움직일 감, 감사할 감 자에 움직일 동(動), 살아날 동, 변화될 동 자입니다. 뭔가 느끼고 마음이 움직여 변화되고, 마침내 움직이게 되고, 내게 선한 생각들이 다 살아납니다.

    가장 불쌍한 이가 어떤 이인지 아는가요? 도무지 감동을 받지 못하는 이가 가장 불쌍한 이입니다. ‘나 그거 다 알아. 나 그거 다 경험해 봤어, 나 그거 다 갖고 있어, 나 그거 다 해봤어’ 하면서 도무지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불쌍한 인생입니다. 감동적인 영화는 보고 또 봅니다. 그리고 눈물을 찔끔하는 장면도,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도 매번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명화는 보고 또 봅니다. 왜? 감동이 오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성도들 사이에는 이런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인상 찌푸리고, 얼굴 굳히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서로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 간의 예의입니다. 당신이 감동을 받든 말든 무슨 상관이요 하는 공동체는 참으로 불행한 공동체입니다. 우린 서로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만 갔다오면, 이 장로님만 만나면, 김 집사님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의욕이 생겨요’하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들 사이에 늘 이런 감동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역자 수련회 주제가 ‘감동이 있는 목회를 위하여’로 교역자들이 모두 감동을 주제로 연구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약성경에 감동이란 단어가 모두 8번 나온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이란 단어가 혼자 쓰이지 않고 대부분이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에 감동되었더니”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에 나타난 감동은 거의 모두 성령의 감동입니다. 우리는 감동적인 사람들입니다. 감동이 풍부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감동, 사람에게서만 받으려 하지 맙시다.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는 것은 멋진 일이긴 하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결정적인 감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예배 때, 성령의 감동이 뜨겁게 임하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를 때 벅찬 뜨거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바랍니다. 찬양대의 찬양을 들을 때마다 ‘야 잘한다’가 아니라 뭉클 하는, 그야말로 리듬을 넘어서는 그 무엇과 공명(共鳴)되어 하나 되는 감동, 성령의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아멘 아멘 하는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 물밀듯 밀려오는 영의 권세가 여러분을 압도하기 바랍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과 감동이 계속 이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밀려오고 솟아나고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성도, 그가 행복한 성도입니다.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푸는 이가 아닌, 사람에게서 위로받는 이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보답 받고 응답받고 축복받고 감동하는 이가 가장 성숙하고 가장 위대한 성도입니다.

    왕십리중앙교회에는 감동이 있음을 믿습니다. 믿음이 아름답고 훌륭한 성도들로부터 믿음에 감동을 받고, 예배와 거룩한 기도와 설교를 통한 성령의 감동이 충만한 교회임을 믿습니다.

 

    3.

    그 뿐 아닙니다. 성숙한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은 자유함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유함을 모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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