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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대적 신뢰가 답이다.
본문 시편 62:1~62:12
설교자 이규현 설교일 2014-04-02

제목 : 절대적 신뢰가 답이다
본문 : 시편 62: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본문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찬양으로도 많이 부릅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처한 험난하고 어려운 상황이 잘 묘사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총애를 받았고, 왕의 사위가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때까지는 다윗이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악한 영이 임하자 사울은 질투의 화신이 되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총공격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그 이후, 다윗의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당장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다윗이 광야로 도망 다닐 때에는 미친 척하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살기 위해 갈 데까지 간 인생이었습니다.
다윗은 꽤 오랫동안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숨어 지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될 줄 알았는데, 오랜 세월동안 아둘람 굴에 갇혀서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이 될 때까지도 복잡 다난(多難)했지만, 왕이 된 이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 가운데 추악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비극적 사건은 아버지와 왕인 다윗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됩니다.
백발이 성성하게 된 노년시절에도 아들 압살롬의 왕권을 찬탈(簒奪)하려는 반역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은 날마다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다윗의 인생 전체를 흔들어놓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아꼈던 신하 아히도벨이 반역합니다. 아히도벨은 충신(忠臣)이었습니다. 그런 신하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기쁨이고,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에는 눈치 빠르게 압살롬의 편에 서고 맙니다. 그는 겉으로는 충신이었으나, 순간순간 얼굴을 바꾸는, 간사한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아들의 반란과 함께 신하 아히도벨의 배신은 다윗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극한 상황으로 몰린 것입니다.
다윗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뼈가 시리도록 아프고 외로운 밤들을 보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시 23:4),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시 23:5)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시는 왕실 안에서 휘파람을 불며 지은 시가 아닙니다. 노도질풍(怒濤疾風)과 같은 인생의 역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윗은 예측불허의 미래를 향해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삶을 살았습니다.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인간들 사이에서 거절과 배신과 실망으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 중에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배신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배신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배신당해보셨습니까? 살맛이 없어집니다. 죽고 싶습니다.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를 통틀어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태평성대를 누렸던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윗 개인사(個人史)의 커튼을 걷어보면, 파란만장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의 모습입니다.
왕 개인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면, 피와 배신, 수많은 좌절로 얼룩져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삶의 전경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부딪치는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똑같지는 않지만, 다윗의 이야기와 흡사한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재현(再現)되고 있습니다.
시편을 읽다 보면, 진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시편의 대부분이 삶의 경험에서 나온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기와 시련의 깊은 골짜기에서 기록한 시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시편을 읽을 때에 가슴을 치는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다윗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윗의 왕권을 흔드는, 다윗을 추락시키기 위해 격렬히 흔들어대는 세력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담’은 보호막, 삶의 안전망, 삶을 지켜줄 것 같은 울타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담이 넘어진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흔들리는 울타리’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왕실과 왕권은 성공과 안전이 보장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모든 담과 울타리들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다윗은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애쓰지만, 그 자리에 올라간 시점부터 그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내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화살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겉으로는 축복을 이야기합니다. 속으로는 저주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진실을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축복을 말하고 있지만, 속에서는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다윗은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는 늘 흔들리고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인간들에게 둘러싸여있다고 고백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삶 역시 매우 불안정한 터 위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아찔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본문 1~2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5절에서 이 구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8절에 보면, 다윗은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신뢰할 것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8절에서 다윗은 중요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다윗은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의지하고’를 다르게 표현하면 ‘신뢰하고(trust in him)’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뢰, 이것은 다윗이 벼랑 끝에서 붙잡았던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믿음이라는 단어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신뢰란 무엇입니까? 불확실함을 전제해서 나온 단어입니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하다면, 신뢰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비행기가 하늘 위를 날아가다가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주 일어납니다. 역사 속에서 비행기가 갑자기 없어진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신문을 보세요.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엽기적인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촌에는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마치 정신병동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군대에 있는 병원에 정형외과 의사들이 많았습니다. 훈련 받거나 기합 받다가 뼈가 부러지거나 다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정형외과 의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신과 의사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고 중 정신과 사고가 가장 빈번합니다. 자살도 수없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좋은 안전시스템을 만들어놓는다 해도 우리의 삶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암을 위한 보험을 들고 정기검진을 받지만,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의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정기검진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웰빙(wellbeing)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합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계획과 기대가 빗나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만성 불안 증세에 시달립니다.
요즘 성공하는 비즈니스들은 사람들에게서 불신감을 제거해주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업종입니다. 사람들이 다 불안해하기 때문에 안심시켜야 합니다. 식당을 경영하시는 분은 식재료가 국산임을 여러 번 강조해야 합니다. 안전한 투자를 위한 투자 상담가들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굉장히 애씁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뢰가 높은 기업 자체가 거대한 자산입니다.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위로해주지 않으면, 비즈니스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사람들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거짓, 사기, 배신, 음모, 술수와 갑작스런 사고, 질병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무상한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작심(作心)해도 나 자신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느낍니다. 자신이 아무리 능력 있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인생은 자신과 상관없이 한순간에 모든 상황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치킨집을 개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조류독감이 발생합니다. 장사를 얼마 해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버지가 교복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기계도 구입하고 직원도 많이 고용하여 사업을 크게 시작하셨습니다. 교복을 단체로 주문받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엄청나게 투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신 지 1년 후에 교복자율화정책이 시작되었습니다. 교복을 몇 벌 팔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삶은 불확실한 세계로의 여행입니다. 우리는 미래라는 시간에 있어서는 늘 미숙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미래를 다룰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떤 것을 붙들어야 우리에게 안정감이 보장될까요?
본문 1절에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2절에 보면,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1,2,5,6절에 ‘alone’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1절에 보면, “in God alone”이라고 기록되어있고, 2절에 보면, “He alone is my rock”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만’, ‘그만’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직(alone, only)’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갈라집니다.
“하나님만 바람이여”,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입니다. 단 하나의, 다른 대안이 전혀 없는, 하나님 외에 고려할 것이 전혀 없는, 오직 하나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흔들립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은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신뢰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취직하거나 사업할 때에 인맥을 찾으려고 합니다. 뒷돈을 마련해서라도 뭔가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과 조건 등 의지할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속고 속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수없이 속았으면서도 해결사를 찾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못 미더워합니다.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은 늘 굼뜬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은 신뢰할 만합니까? 사람들과 약속할 때, 100% 신뢰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큽니다. 적당히 기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실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무리 진실하다 해도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약속해도 그 약속이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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