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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이 연약한 자
본문 로마서 14:1~14:4
설교자 이근호 설교일 2014-04-06

믿음이 연약한 자

본문 말씀: 로마서 14:1-4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이 말씀은 주님 안의 세계에서 성도가 놓여야 하는 위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가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은 엉뚱하게 왜곡되고 맙니다. ‘주님의 세계’와 ‘교회의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회의 세계’에서는 구성원 각 개인의 ‘자신의 세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기 부인이 성립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부인’이 되지 아니하면‘ 주님을 증거한다는 ’주 안의 세계‘와의 속성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서’ 믿음의 연약하다고 여겨진 자를 받아주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 소위 ‘믿음의 강한 자’가 따로 확립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생적으로 모든 타인은 다 자기보다 믿음이 약한 자들로 보게 마련이고 자신은 상대적으로 믿음이 강한 자라고 자부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평가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자리 잡게 됩니다. 각자 자신들이 ‘주인행세’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대적 가치관이 범람해도 겉으로 보기에 그 교회는 참으로 겸손하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런 자를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로마서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입니다. 이 대목으로 이상적(理想的)인 교회를 만들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 나라는 이런 시도를 거부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회는 말씀이 말씀 그대로 활동하고 드러나는 결과로만 발생되는 겁니다.

결코 인간들이 말씀을 실천하고 지켜서 생겨나는 단체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하다’, 혹은 ‘강하다’를 평가할 수 있는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다 자신이 믿음이 ‘연약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성도로 하여금 늘 본래의 자리에 있게 하시는데 그 본래의 자리가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 안에서 인간은 모든 혈육적인 요소는 다 부정되어 사라져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성도는 그동안 가꾸어 온 자기 의를 태워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 걸쳐서 인간들이 보여준 바는 불신과 믿음의 연약함입니다. 자칭 믿음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바로 그 점이 믿음이 없거나 연약한 증거입니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여기면 필히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아를 정립하게 마련입니다. 이게 육신의 본성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에, 이미 인간의 육신은 고장났습니다. 막상 에덴을 떠나보니 모든 게 고생스럽습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부지런히 활동하는 의미와 목적이 더불어 발생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는 고생이 없는 세상에서 영구히 고정된 채 행복과 만족을 누리겠다는 겁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흥정을 나서게 됩니다. 즉 자기 일상 가운데서 건전하고 경건되고 착하고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다고 여겨지는 경우와 업적을 따로 챙겨서는 그런 식으로 마일리지를 쌓게 되면 나중에 그 선한 회복 욕구를 신께서 가상히 여겨줄 것이라고 가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활 가운데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자신이 판단내려 따로따로 구분지으면서 피해를 입은 하나님에서 다소 만족할 보상책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 곧 구원의 나라는 자신이 속해 있는 혈육을 초월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천국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한데 이 믿음의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은 십자가죽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 뿐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고 합류하고 그리고 그 현장을 경유해서 다시 세상에서 도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증거하는 증거성이 미약하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0:20-23에 보면, “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여전히 제자들은 ‘자기 자신의 것’을 자아의 내용물로 채우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여기면 필히 같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 천국에서 누구 높은가를 놓고 다툽니다. 이것이 바로 연약함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은 내가 마신 그 쓴 잔을 먹게 될 것이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과 더불어 죽는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비교나 경쟁이나 전쟁도 마감됩니다. 십자가 죽음의 자리가 성도의 본래의 자리였던 겁니다. 예수님이 마신 쓴 잔을 마시기 아니하면 되지 않는 결과입니다.

제자들이 이 쓴 잔을 마시는 지경이 ‘강한 믿음’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예수님의 본질을 증거하는 수준으로 등장되는 겁니다. 결코 인간들의 자기 증거일 수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임무는 본인의 고유한 가치를 증강하기 위한 이유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연약한 것’을 보여주게 되면 ‘연약한 자’가 되는 것이고, ‘강한 것’을 보여주오야 할 시점이라는 ‘강한 자’로서 활동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일을 조정하시는 분은 주인이신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마치 마리아가 임신해놓고서는 “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았단 말입니까”라고 화들짝 놀란 것처럼, 성도도 예상 믿음이 생긴 것을 보고서 놀라버립니다.

결코 눈 돌려 남을 평가할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오직 성도 모두를 예수님 자신의 행적을 증거하는 용도로 사용하심을 인정하고 수긍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놓을 것은 ‘예수님 함께 죽음’ 뿐입니다. 우상에 바친 고기라서 채소만 먹겠다는 것도 예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면 그 사람이 쳐다보는 이는 예수님이지만 다른 인간과의 비교가 아니라면 미약하나마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친히 관리하심을 증거하는 용도로 쓰여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죽은 자임을 느끼면서 주님만 증거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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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1-4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인간과 인간들만 있다고 여기는, 인간들로만 구성되는 현실에서는 해답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 안에서의 사람이 점유하는 위치를 주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조정을 해주시는 겁니다. 만약에 주님이 여기 안계시고 인간과 인간만 있다면 자기 빼놓고 다 믿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럴 때 너는 누구냐, 하는 말은 “너의 지금의 위치가 네가 정했느냐, 아니면 남이 너를 정해주더냐? 현재 너 빼놓고는 믿음이 다 안 좋은데 그러면 너만 믿음이 제일 좋은데 나만 믿음이 좋고 다른 사람은 나보다 믿음이 못하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 네 자리는 누가 너보고 그런 자리를 점유하라고 이야기했지?? 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뭐라고 답변하느냐 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가 정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정하셨으니까 저는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한다는 말이지요. 주님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정하는 자리는 주님만 할 자리지 네가 그렇게 나설 입장이 못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내용이 그거예요. 주인의 자리에 그 교회 당회장, 어떤 목사, 교황, 그 어느 누구라도 주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그러면 교회 내에서 우리가 어느 자리를 배정받았는가, 어떤 자리가 우리 자리인가?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가 나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자 소리 듣는 것을 마치 나에 대한 비난, 단죄, 또는 폄하, 또는 우습게 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인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이 연약한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라고 수긍하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에요. 믿음이 연약한 자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예수님 빼놓고 다 믿음이 연약해요. 예수님 빼놓고는 다 믿음이 연약한데 어느 정도로 연약하냐 하면, “나는 믿음이 좋은데 왜 너는 믿음이 약해.”라는 말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 약해요. 많이 약해요. 아주 약해요.

교회 내에서 믿음 시합이 벌어지고 믿음 경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목사는 그걸 유발시키지요. 새벽기도 나오시면 그만큼 어드벤티지가 주어지고 새벽기도 안 나오시면 믿음이 약한 사람이고. 보통 교회에서 예배가 세 번 있어요. 낮 예배, 오후 예배, 수요예배, 그리고 거기에 보탠 것이 새벽기도시간, 거기에 금요일 시찰회, 그건 백수 아줌마들이 모이는 건데 그 시찰회, 별 직업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구역예배인데, 그게 벌써 몇 개입니까? 새벽기도 일곱 번, 주일 낮, 수요일, 금요철야, 구역예배. 그게 숫자가 여덟 번이 넘는데 거기서 숫자가 감한 만큼 믿음이 약한 자가 되고 숫자가 추가한 만큼 믿음이 강한 자가 되어버려요. 이건 뭐냐 하면, 일부러 신앙 경쟁으로 유도하는 느낌이 들어요. 신앙을 가지고 누가 강한 자냐, 많이 참석하는 자는 강한자고 적게 참석하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자다. 그러면 석달 만에 온 사람은 믿음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6개월 텀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거든요. 일 년 되어도 안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빼놓고 믿음 다 약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이야기 할 때는 “나는 어떻게 믿음이 강합니까?”라고 묻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믿음이 어떻게 강합니까?”라고 묻지 말고 “주님이여, 제가 어떤 면에서 믿음이 약한 사람에 해당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야 돼요. 꼬박꼬박 모임 때마다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연약할 수밖에 없는 그 연유가 뭡니까, 라고 우리가 물어야 돼요.

로마서 14장을 보면서 출발부터 오해되는 대목이 뭐냐 하면, 기존의 교회라는 것이 있잖아요. 기독교라는 이름이 교회가 있잖아요. 그 21세기 교회에서 나오는 현상들을 가지고 이 로마서 14장을 비교해가면서 평가를 내리는 이것이 원인부터 잘못이에요. 기존이 교회를 교회라고 여기고 그 다음에 로마서 14장의 말씀을 가지고 교회에서 어떻게 이상적인 교회가 되는가, 라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는 자체가 전혀 성경 속으로 못 들어간 사람들의 보편적인 의식입니다.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기존교회, 한국교회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이것은 주 안의 세계입니다. 교회 안의 세계가 아니고, 교회 안의 공동체라는 세계를 이렇게 맞추라는 말이 아니고 주 안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지금 제가 말한 취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읽어 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할 때 사람들의 기본적인 본성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여,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이어야 합니까?”라고 일단 묻고, 자기가 질문의 틀을 일단 만들어놓고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지?”라고 하면서 로마서 14장 17절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렇게 갖다 붙이는 거예요.

이게 잘못이라니까, 이게 잘못이에요.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다 같이 구원받고 참된 교회라고 인정받지? 옳지,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내용을 채우면 되겠구나.’라는 것이 잘못되었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잘못되지 않은 게 뭐냐 하면, “그냥 하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냥입니다, 그냥. 우리 교회를 거기다가 집어넣지 말란 말이지요. 그냥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10년 만에 한 번 물어봅니다. 믿습니까? 이것은 너무 중요하니까 10년 만에 물어보는 거예요. 왜 내가 사는 교회를 여기에 집어넣습니까? 오히려 내가 사는 교회를 빼버려야지. 내가 다니는 교회를 믿지도 마세요.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중요한 거예요. 내가 하늘나라 속하면 되었지 왜 교회에 속해야 됩니까? 내가 지금 하늘나라에 속하면 되었지 내가 다니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은. 성경에 우리 교회라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날 사랑하심이라고 하는 찬송이 있는데 전 용렬 목사님이 이런 시비를 걸어 놨어요. 성경에 날 사랑하심이 없어요. 주님은 하늘나라만 사랑하지 날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왜 자꾸 나를 거기에 깔고 들어가느냐는 말이지요. 날 깔고 들어가니까 내가 속한 교회도 잘 되어야 나도 덤으로 잘된다고 착각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무엇도 더 필요 없습니다. 예배당 건물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사시면 누가 뭐래도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제 말이 어렵습니까? 어려운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목사님, 기존교회는요…….” 자꾸 기존교회를 생각하니까 이게 어려운 거예요.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네가 받되 비판하지 말라, 그런 뜻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를 빼버리세요. 그냥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자꾸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그 선입감을 버려야 됩니다.

삼거리에 가면 플래카드 붙어 있어요. 대구대학교에서 강연하는데 월명스님이 오신답니다. 대구대학교가 원래부터 기독교재단이거든요. 언제부터 이 학교가 스님 모시고 강연을 하게 되었는지. 그 주제가 뭐냐 하면 소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 이게 주제에요. 아니, 죄송합니다. 주제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도’ 같은 뜻이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도’가 주제입니다. 월명스님. 그리고 뭐라고 해 놓았느냐 하면, 수능점수 높이고 싶은 사람들, 취직이 안 되고 있는 청년들은 오라고 되어 있어요. 그게 월명 스님이지요. 그게 월명 목사라 해도 아무 달라질 것이 없어요.

교회라는 게 바로 그런 곳이에요.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도. 오직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과 연관시킨다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이렇게 한다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염두에 두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아버리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내 기도가 이루어지는구나.’라고 흥정과 거래와 타협조로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되, 할 때는, 이 말을 실천에 옮기려면 일단 자기 믿음은 연약한 자가 되면 안 되고 강한 사람이어야 하고, 자기 빼놓고는 다 연약한 사람이고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으면 “로마서 14장 1절 말씀대로 제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습니다. 지금 사진 찰칵 찍으시고 내 소원은 이루어주소서.”라고 나온다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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