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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앗수르의 영광
본문 에스겔 31:1~31:6
설교자 이근호 설교일 2014-04-02

앗수르의 영광

2014년 4월 2일                   본문 말씀: 에스겔 31: 1-6

(31:1) 제십일년 삼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31:2)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31:3)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31:4)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5)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31:6)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개인적인 일에만 몰두 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고대 제국의 하나인 앗수르 이야기에 관심 갖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맺어지는 사회에서는 사상이 중요하겠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모든 것이 예언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사상에는 나름대로 목적과 의도가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의 예언에는 인간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목적을 향하여 질주하게 됩니다. 피조 세계의 그 어떠한 방해에도 이 질주를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예언한 대로 움직이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 앞에서 사적인 모든 시도는 실패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예언은 인간 실패를 유도합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네들이 하는 일에 더 신경 쓰고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필히 실패를 낳게 됩니다. 하다 보니 실패로 이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실패일 수밖에 없는 일에 인간이 나서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평소에 흠모하고 원했던 바가 하나님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주변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오늘 본문에 의해서 그 당시 최고의 나라입니다. 인간들이 마음 속으로 품고 있는 그 이상적인 상황이 구체적기고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는 나라가 곧 앗수르입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원하지?”라고 분명치 않았던 사람들도 앗수르 나라를 접하는 순간, “그래 맞아. 내가 평소에 원했던 바가 저것였어”라고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로서 개인은 ‘멋있는 집단’으로서의 국가 형식에 이미 매료되고 있고 긍지나 자부심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이미 집단의 일부로 소속되어 버립니다. 한 통속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부심이 곧 국가입니다. 이런 예는 교회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교회에 아주 돈이 많고 유력한 인사 내외간에 참석했다고 가정합시다.

십일조 및 막대한 헌금을 선뜻 내놓았다고 칩시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교인들에게 신앙생활의 방해로 작용하겠습니까 아니면 보람과 활기를 북돋아줄까요? 평소에 교인들은 없는 살림을 가지고서는 좁은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믿음으로 산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유력한 자의 기부금을 대하는 순간, 교인들은 흥분상태에 빠집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가난한 교회를 살리겠다고 돌보아주시는군요”라고 하면서 감격들을 할 겁니다. 바로 이런 사실로 기뻐했다는 것은 곧 평소에 십자가 길, 고난 운운한 것은 다  정작 얻고자 하는 바가 따로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핑계입니다. 사실, 교인들은 자신들이 뭘 감추고 있는 바로 알 길이 없습니다.

이 감추고 있는 바를 들통내어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유력한 자를 교회에 등장케 하신 것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요즈음 식으로 하면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나 서유럽입니다. 선진국입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국가를 말합니다. 사적으로 이미 인간들은 자신들이 되고 싶은 상황을 그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이상국가를 벌써 현실화한 나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런 나라처럼 되는 것이 평소의 소망입니다. 기도를 간절히 하는 그 바탕에서 이런 염원들이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망한다”고 예언해버립니다.

예언이란 실은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이 실은 예언 안에서 과거에 속한 현재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매일매일 이미 확정난 일에 대해서 확인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인간들의 시간 의식에 의하면, 출생이 먼저 있고 나중에는 본인의 장례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 안에서는 장례식이 먼저고 출생은 나중입니다. 미래가 먼저가 과거가 나중에 해당됨을 파악되게 하는 방식으로 적용시킵니다. 인간들이 평소에 해대는 모든 선택은 실은 이미 확정나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패 뒤집기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확정난 일에 새삼 확인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일에 실패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실패가 곧 인간이 짊어져야 할 운명입니다. 실패 중에 최고조의 실패는 본인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은 이 당에 출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실패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십자가 앞에서 실패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평생 분투노력을 다해도 최종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치 곰을 부대 안에 잡아넣으면 곰은 온갖 몸부림을 치고 부대는 울퉁붙퉁 튀어나와도 역시 곰의 형편은 달라질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앗수르가 하나님의 예언에서 점하는 취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몽둥이’입니다.(이사야 10:5)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건지시기 위해 필요한 몽둥이입니다. 유다 나라, 특히 앗수르가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성이 드높을 때, 유다의 왕 아하스 왕은 앗수르를 흠모했습니다. 이사야 7장에서 이 때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왕을 찾아옵니다.

이미 아하스 왕은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 나라의 공격에 대비해서 최고의 강대국인 앗수르와 동맹을 맺은 놓은 상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나라는 그런 식으로 지탱해서는 아니될 나라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식’입니다. 인간들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방식입니다.

흠모할 만한 강대국과 결탁한 아하스 왕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거절하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런 형편을 이미 하나님께서 아셔서 아하스왕을 실패케 합니다. 즉 자신이 믿는 그 나라가 도리어 유다 나라를 치는 몽둥이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처녀가 낳은 아이는 그 어떤 인간으로부터도 흠모를 받지 못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그 인간을 치는 몽둥이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즉 내가 나에게 몽둥이가 되게 하는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기 보다는 정작 내 욕심이 되고 싶어하는 상황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이 들리지도 않고 거부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실패의 자리에서 비로소 예수님의 아픔이 등장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망하는 그 자리가 곧 주님이 우리를 살리는 자리요 복된 자리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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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1:1-6



“제 십 일년 삼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볼찌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오늘 본문 내용은 앗수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평가하신 것입니다. 앗수르는 최고였다, 그 당시에 최고의 제국이었고 모든 것이 풍요로웠고 넉넉했으며 그 나라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마치 에덴동산 같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람의 동산은 아닙니다. 항상 성경 보면서 자꾸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참 많이 있거든요. 에덴동산 같은 ‘야, 살기 좋겠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참 타고난 인식이라는 것이 무시를 못해요.

분명히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거하는 동산이라고 분명히 언급을 해도 꼭 살기 좋겠다는 식으로 나와요. 천국이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천국인데 ‘야, 사는데 편하겠다.’ 그런 인식부터 먼저 챙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교자로서는 그걸 바꿔줘야 되는 부담을 자꾸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 땅에 사람 사는 것이 힘들잖아요. 힘드니까 하나님 도움 받아서 자기가 좀 편한 대로 살아보겠다는 그 생각이 속에 잠재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은 못하고 내가 살기 편하냐, 그것부터 우선 조건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면 성경해석이 잘못되었습니다. 교정이 필요한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에요. 3절에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이런 식으로 풍요롭게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을 언급을 했을 때, 이것을 오늘날 에스겔이 예언한 말씀을 전달해 보면요, 사람들은 옛날 앗수르 제국에 별 관심 없고 사적인 일에 관심 있지요. 사적인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이제부터 앗수르에 대해서 설교하겠습니다.” 하면 연결이 안돼요.

우리의 관심사는 사적인 거예요. 일상적인 것이고 하루하루 어떻게 재미있게 사는가, 어떻게 수입을 얻으면서 사는가, 그것이 우선인데 성경에서는 앗수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이게 대한민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앗수르 이야기가 나오니 교인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무엇과 연결이 되는가 하면, 지금 자기가 사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과 에스겔 31장에 나오는 앗수르제국에 대해서 하나님이 언급하는 취지하고 연결이 잘 원활하게 성립이 안돼요.

그러면 우리의 관심은 사적인 내 사생활에 관심이 있단 말이지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올해 내 일이 잘 풀리겠습니까, 이사는 언제쯤 가면 좋겠습니까?” 이런 사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대해서 네가 알아?” 하면 앗수르하고 이사 가는 것하고 아무리 따져도 별 상관없이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할 리가 없잖아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중요한 것은 사상입니다. 생각이 같아야 돼요.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요한 것은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제켜 놓고, 하나님을 빼버리고 이야기하니까 서로서로 좋은 게 좋은 걸로 넘어가요.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면 저 사람은 나한테 도움 될 사람이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조치됩니다. 그렇다면 앗수르 제국이 등장하는 이유가 뭐냐, 논리를 따라가면 복잡해지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앗수르 나라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없어질 나라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너무나 번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번창한 나라, 만약 여러분의 이웃이 너무 잘살고 모든 능력이 넘치고 권력자와 연계되어 있고 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힘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미워할까요, 아니면 흠모의 대상이 될까요? 흠모의 대상이 되면서 그 사람이 신앙의 방해물이 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해야 돼요. 같은 옆집 말고 같은 교회에 새로 누가 등록을 했는데, 재산이 한 250억쯤 되는데, 대구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그런 분이 교회에 등록을 했다고 한다면 그 교회 교인들에게 신앙에 도움이 될까요, 훼방이 될까요? 백프로 신앙에 방해물이 됩니다.

앗수르가 분명 개인은 아니에요. 그러나 앗수르제국 안에는 개개인이 소복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앗수르 국민들은 자기 나라가 천하 최고의 제국이 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동시에 주변국가, 약소국가, 작은 나라들, 특히 이스라엘이나 유다, 이런 나라들은 그 앗수르 나라를 그렇게 흠모했어요. 참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유다 왕이 전권적으로 법으로 정해서 이름만 여호와지 알맹이는 쏙 빼버리고 거기에 앗수르 사람들이 믿는 종교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왜, 결과를 보라는 말이지요. 교회를 몇 년 다니고 기도를 어떻게 하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다 집어치우고 결과를 보자. 이렇게 하나님을 믿었더니 부자 되었더라, 결과가 말해주는 거예요. 평소에 사람들이 부자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교회 와서 부자 되었다고 한다면 그 방법, 노하우, 하나님을 설득하고 하나님을 다룬 숨겨진 비법을 하나 배우기위해서 얼마나 그들은 노력을 하겠습니까? 금식기도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 다 따라서 금식기도를 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앗수르 나라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로 좋아들 하지 않고 정작 하나님보다 더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겁니다. 그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내 안에 하나님, 하나님, 해도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는 어떤 것, 하나님이 싫어하는 목표가 들어 있을 것인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할 때는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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