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설교

제목 겟세마네 기도
본문 누가복음 22:39~22:46
설교자 이윤재 설교일 2014-04-13

사순절(3) 눅22:39-46

 

겟세마네 기도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계절입니다. 이 거룩한 계절에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만일 당신의 삶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누구나 이런 질문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몰리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우리가 사랑한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마 죽음앞에 넋을 놓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조금 정신이 든 후에 주섬 주섬 핸드폰을 꺼내 정신없이 전화번호를 찾을지 모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그리고 남편, 아내, 친구...그리고 떨리듯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감사해”. “아들아, 사랑해. 그리고 고마웠다”. “여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런데 만일 우리의 삶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하루란 시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 내가 가진 인생의 고민이란 것이 죽음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구나. 왜 내가 이런 쓸데없는 문제로 고민하고 살았는가?” 또 “아, 내가 미워하고 갈등하고 살았던 그것이 죽음을 앞에 두고 보니 아무 짝이 쓸데 없는 것이구나. 왜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살았지?” 그리고 뒤늦게 자신을 되돌아 볼 것입니다. “아, 나는 내 일생을 최선을 다해 살았나? 나는 땅에 할 일을 다한 것인가?”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갑자기 길을 나설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남은 미련을 털어버리기 위해 혹시 여행을 떠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죽음을 하루 앞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믿는 사람은 물론 안 믿는 사람도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기도를 선택할까요? 기도밖에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능자앞에 무력자로 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모두 기도의 일생이었지만 특히 그의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은 모두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로 마쳐졌습니다. 그의 삶의 첫 장면에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공생애 시작을 광야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의 마지막을 기도로 마칩니다. 39절을 보실까요? 눅22:39, “예수께서 나가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인생의 마지막을 기도로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입니까? 제가 아는 한 권사님은 늘 입버릇처럼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가 죽을 때 기도하다 죽게 하옵소서”. 드디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자 그는 자신을 교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앉았던 자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뒤에서 그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밤이 깊어 권사님의 숨소리가 잦아 들었습니다. 가족이 가까이 와서 보니 숨을 거두었습니다. 평소에 그가 기도한대로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간 것입니다.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누구나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도하다 하나님께 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예루살렘 감람산 발치에 올리브 나무 숲이 있고 거기에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바위가 있습니다(그림1).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바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수님이 기도하신 동산이 있습니(그림2). 오래된 감람나무들이 지금도 서 있습니다(그림3). 그가 기도하신 자리에는 이런 작은 조작이 있습니다(그림4). 예수님이 온 몸을 던져 기도하시는 감동적인 조각입니다. 제가 이것을 사진을 찍어 저희 집에 걸어놓고 저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자 늘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모범적인 기도, 죽음을 하루 앞둔 간절한 기도,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어떤 원리를 배우며 우리도 그 기도를 통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겟세마네 기도의 하이라이트는 42절입니다. 눅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의 기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42절, “네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지지난 주에 설교한 대로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강제로 내쫓거나 억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필연적이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으로 그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기도는 자발적 순종의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인류를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계획되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었지만 운명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중의 하나가 운명주의입니다. 운명주의란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을 누구도 어거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정해진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철학이 그렇게 생각하고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등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자유의지란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격적인 선택입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우리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강요함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순종하고 따르게 함으로서 이루어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야 하는 일이 있고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를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버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평안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둘 사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러면 기도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 내 의지를 꺽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를 갖게 하고 또 하나는 그것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때는 내 의지가 하나님의 뜻가운데 사용되도록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국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용기요 순종입니다. 자. 하나님의뜻이 예수님이 죽어 인류를 살리고자 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복종시키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 사이에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이 예수님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안으로 들어가시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죽음이 부활이 되게 하셨다”. 기도가 왜 중요합니까? 기도하는 것과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내 속에 있는 내 뜻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용기를 갖게 하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내 뜻을 겸손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하나는 순종이고 또 하나는 용기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정말 어려운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 어려운 것은 내 안에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과 내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과 생각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 그것은 선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내 뜻과 내 생각은 자주 하나님의 뜻에 반항합니다. 여기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케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아가 늘 순종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다시 42절입니다. “주여,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도 자신안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키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안에 있는 자아를 깨뜨려 하나님 뜻에 복종케 합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자기의 의를 깨뜨려 하나님앞에 복종시킨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더큐 에스트라는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기도란 나의 의를 하나님의 의와 바꾸는 영적 과정이다”.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과정이 기도입니다.

 

지금도 겟세마네 동산에 가면 예수님이 기도하신 자리에 이런 시가 영어로 쓰여 있습니다. "Father, I do not understand you, but I still trust you". "아버지, 내가 당신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도 하나님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능력이 많으신데 굳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지 않고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아버지,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뜻은 underst....

내용 전부보기

이전 목록 다음

  • 본문
  • 제목
  • 설교자
  • 설교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첫페이지로 전페이지로 1 2 3 4 5 6 7 8 9 10 뒷페이지로 마지막페이지로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The Venus Factor Venus Factor Diet Plan Venus Factor Venus Factor Blog Venus Factor Bonus Venus Factor Diet Venus Factor Cost Venus Factor Account Venus Factor Amazon The Venus Factor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