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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적 예수와 십자가 처형
본문 이사야 50:4~50:9
시편 31:9~31:16
설교자 조헌정 설교일 2014-04-13

사순절 6

역사적 예수와 십자가 처형

사 50:4-9; 시 31:9-16; 필립 2:5-11; 마 27:11-54

 

오늘은 사순절 여섯 번째 주일로 예수 생애 마지막 주일을 기념하는 주간으로 흔히 고난주간이라고 불립니다. 오늘은 또한 종려주일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호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종려주일 본문이 아닌 십자가 처형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실 그간 저는 새끼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의 환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구원자로서의 메시아 예수를 향한 환호가 아니라, 동시에 예루살렘 성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로마군대의 입성 행렬을 비웃는 일종의 정치적 패러디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몇 년동안 종려주일 패러디를 재현하는 행위를 하여왔었는데, 불행히도 이는 내년으로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종려의 환호와 십자가 고통의 교차]

 

그런데 우리가 그간 종려주일을 지켜오면서 사실 잘못을 범한 것이 있는데, 그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환호 소리에 정신이 팔려 정작 들어야 할 십자가 죽음을 향한 예수의 비장한 결단 그리고 이어지는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의 소리를 듣는 일에 소홀히 하여 왔는데, 오늘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하는 절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4개의 복음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따라 예수의 마지막 외침을 달리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십자가상의 칠언이라고 부릅니다만, 이 또한 일곱이라는 숫자에 맞춘 일종의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작업의 결과이지, 꼭 일곱 마디의 말씀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 말씀에도 보면,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외에 ‘예수께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큰소리가 외마디의 비명이었는지 어떤 의미가 담긴 말씀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큰 소리에 이어 성전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야훼 하느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보관되어 있는 지성소의 휘장이 쭈- 욱-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예수 부활 이전에 이미 성인들의 부활이 있었다고 하는 신학적인 논쟁을 유발하는 그러면서 동시에 현대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우주적이고 신비적이고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의 십자가 사건의 기록을 사실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신학적인 해석이 가미된 말씀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일생을 그린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몇 년 전에 방영된 Passion of Christ는 영화는 영화의 대부분을 예수가 채찍에 맞을 때의 살점이 떨어지는 모습이나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의 그 소리와 흘리는 피를 매우 실제적으로 묘사함으로 인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남한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보수적인 교단들은 이를 이단적인 영화로 거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의 십자가 고통을 잘 그려낸 영화가 이단으로 정죄받아야 했을까요? 그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런 고통을 쉽게 이겨내는 영웅으로 간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니케아신조나 사도신조를 비롯한 여러 교리서에서 예수는 참 하느님이자 동시에 참 인간이었다는 상반되는 모순성을 절대적 진리로 계속 강조하여 왔습니다. 사실 이 교리에 따른다면 그 영화는 전연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은 예수가 받아야 했던 고통의 소리를 애써 무시함으로 예수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제자로서의 신앙이 아닌,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신자로 머물고 만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십자가의 고통은 부활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부수 요소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근본 잘못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요,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의 핵심 말씀들은 모두 뒤로 밀려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따라 삶에 책임을 지는 제자와 사도로서의 살아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이 묘사해내는 고통의 소리에 대해 이것이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귀를 활짝 열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편 기자가 그려내는 고통의 탄식, 이보다 더 인간의 고통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요? “야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괴롭습니다. 울다 지쳐 눈은 몽롱하고 목이 타며 애간장이 끊어집니다. 괴로워서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며 한숨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더 견딜 수 없이 기운은 다하였고 뼈 마디마디가 녹아납니다.” 우리는 지난주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였던 한 교우님의 죽음의 소식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아내의 입을 통해 그가 겪었던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들었습니다. 인간은 한없이 강한 것 같아도 한번 무너지면 겉잡을 수 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간혹 병원 심방을 할 때, 지난 주에도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안 되는 질병을 겪고 계시는 교우들로부터 고통의 소리를 듣습니다. ‘목사님 너무 힘들어요. 차라리 하느님께서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어요.’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첫 시집을 낸 이후 15권 이상의 시집을 낸 신현림 시인은 <나의 싸움>이란 시에서 삶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들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나의 싸움> 신현림)

 

외로움, 괴로움, 슬픔, 독약, 실패, 치욕 저승, 우울, 쓸쓸함, 불안. 짧은 시구 안에 온갖 어둠의 언어를 잔뜩 집어넣어 독자의 마음을 캄캄한 구석으로 몰아가더니 마지막 시구에서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하는 호통으로 끝나는게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치 터널을 지날 때에 터널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 이제나 저제나 하는 끝냄의 기대를 포기하는 순간 터널이 끝나 밝은 햇빛으로 갑자기 나와 눈이 부실 때의 기분입니다. 이 시인은 오늘 시편 기자가 마지막 결어 부분에서 “야훼여, 나는 당신만을 믿사옵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오니 웃는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과 고민을 깊게 드러내면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시인이란 격렬한 고통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탄식과 비명이 입술을 빠져나올 때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 두 편의 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키엘케고르는 시인을 왜 삶의 탄식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일까요? 하나하나의 시적 작업은 그에게 창작의 열매라는 놀라운 행복감을 가져다주지만, 결국 그 행복감도 잠시 그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고통에 대한 깊은 감수성으로 인해 또 다시 그 깊고 깊은 고통의 자리에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언자의 내면적 갈등]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 또한 불의한 권력자를 향한 강한 질타가 담긴 예언의 말씀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와 같이 예언자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바른 말을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박해와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폭력 앞에 완전히 무력한 자로 서 있는 모습입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침을 뱉으면 침을 뱉는 대로 모든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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