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설교

제목 복음 앞에 무릎 꿇다
본문 요한계시록 3:20~3:20
설교자 김영봉 설교일 2014-04-13

                                                                            "복음 앞에 무릎 꿇다"
                                                                 (Kneel Down Before the Gospel)

                                                                  --요한계시록(Revelation) 3:20
 

1.

오늘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the Palm Sunday)입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금문(the Golden Gate)를 통과해 들어가실 때 무리들이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림)

오늘로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한 주일이 시작됩니다. 이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일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 한 주일을 '수난주간' 혹은 '고난주간'(the Passion Week)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이 한 주간 동안 더 깊이 기도하고 때로 금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고 또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주간에 결정적인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첫째 사건은 금요일에 일어났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설교를 통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 떨었다는 사실은 주님께서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죽음을 당했다는 증거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둘째 사건은 일요일에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내려가셨던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옛날 몸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셨습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듯, 우리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거룩하고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이 단순한 '유대 청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십자가가 우리 모두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롬 5: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감리교 교리는 그것을 '선행은총'(先行恩寵, prevenient grace)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앞서서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

이 지점에서 잠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제기하는 질문 중 하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믿지 않을 때 이런 질문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혹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들어 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왜 예수만 믿어야 구원 받는가?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왜 예수 믿는 것 하나만을 기준으로 구원과 멸망을 가르는가? 그냥 두면 나름대로 잘 살다 갈 사람에게 왜 예수를 전해 주어 지옥에 가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예수를 전해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선하게 살아 온 실력을 기준으로 심판을 해야지, 예수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를 기준으로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예수에 관한 복음을 듣고서 믿지 않았다고 하여 멸망을 당한다면, 차라리 아예 듣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생긴 질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상태에 대해 몇 가지의 은유(metaphor)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죽음'이라는 은유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인 죽음을 '잠'이라고 부르신 반면, 하나님을 떠나 사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에 대해 준비시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 10:28)

여기서 예수님은 목숨보다 더 큰 생명이 있음을 전제하십니다. 몸은 죽어도 여전히 지속되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어 있으면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반면, 영혼이 살아 있다면 몸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잔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은유는 '노예됨'이라는 은유입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인간은 노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절대 자유'(absolute freedom)가 근본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누구에겐가 혹은 어떤 힘엔가 예속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절대 자유'나 혹은 '예속'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유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는 힘에 예속되느냐, 아니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힘에 예속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우리를 노예로 사로잡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무엇이든 우리가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이고 다른 하나는 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악마'(demon) 혹은 '마귀'(devil)라고도 불리는데, 이 단어는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나 귀신 이야기와 혼동할 가능성이 높아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탄은 뿔 달린 귀신이 아닙니다. 영적 존재로서 우리가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법으로 우리를 속여 하나님을 떠나 살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됩니다. 죄 자체가 힘이 있어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에 물들어 있어서 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이 죄를 사용하여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죄 자체가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은 죄를 탐합니다. 물론, 우리 마음 안에는 선을 따르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새로 지어지기 전에는 죄의 힘에 짓눌립니다. 그래서 죄의 노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따라서 기독교 복음은 예수라는 엉뚱한 기준으로 심사하여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두면 잘 사는 사람에게 예수를 소개하여 멸망 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살기에 죽은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을 살리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기 거부하는 것은 죽음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살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멸망 당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구원자를 뿌리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속박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가 되면 우리를 구속하고 있던 모든 멍에가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사탄의 속임수가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죄의 굴레가 힘을 잃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로 지어지고 나면, 우리의 머리를 숙일 대상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생기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돌아오고 나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진정한 죽음이라는 것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에 젖어 사는 동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떠나 죽음 가운데 살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 살고 있는지 자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 자신의 삶 속에서 죽음의 냄새를 진하게 맡게 됩니다. 그럴 때면, "과연 내가 살아 있는가? 사는 것이 이게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혹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겪게 되는 노예됨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것도 역시 하나님에게 돌아오고 나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유를 누리고 보면, 과거에 얼마나 구속을 받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거룩하게 살고 보면, 죄의 노예로 살던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보면, 과거에 사탄에 속아 얼마나 헛되게 살았는지를 깨닫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보면, 우리가 우상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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