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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본문 마가복음 1:9~1:11
설교자 황의경 설교일 2014-05-06
와싱톤한인교회 황의경목사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With You I am Well Pleased) 마가복음(Mark) 1:9-11     지금 보시는 사진에는 새 두마리가 나뭇가지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왼쪽에 있는 새는 어깨에 낙하산(parachute)을 메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는 낙하산이 필요치 않지요. 어떤 부모에게서 어디서 태어났는지, 털 색깔이 어떤지, 덩치가 큰지 작은지에 아무 상관없이 날 수 있는 새로 태어났다면 그는 나뭇가지에서 발을 내 딪는 순간, 날개가 펴지며 창공을 가로지르게 되있는데, 어린 새끼 새도 아니고 장성한 새가 이렇게 낙하산을 꼭 메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옆에 서 있는 새가 그를 쳐다보며 이렇게 물어봅니다; "Why are you holding onto the parachute? 너는 왜 낙하산을 메고 있니?" 왜 이 새가 낙하산을 꼭 메고 있는가의 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자기자신이 '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새'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날 수 밖에 없는 존재, 날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아무 의지하는 것 없이 허공에 몸을 맡기었을 것입니다. 오늘 교독한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30 여년의 세월을 보통사람으로 지내시다가, 요단강의 세례를 통하여 더이상 평범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정체성이 공개적으로(publically) 알려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시는 주님 위에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재하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언뜻 읽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 음성이, 세례요한과 또 요단강 주위에 있는 백성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가르쳐주려 하시는 말씀 같지만, 본문을 자세히 보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음성은 요단강 주위에 있는 백성들보다 그 아들 예수에게 직접 들려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써 온갖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거쳐,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예수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려주고 싶으셨던 음성은 “그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상기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을 떠난 뒤 그에게 들려올 목소리들은, 그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음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목수의 아들", “예언자”, “선생님”, 심지어는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바리세인과 서기관들, 사랑하는 제자들과 그의 형제 누이들까지도 그가 진정 누구인지 알아주고 믿어주는 이들이 없는 가운데, 그가 끝까지 부름받은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속에서 그가 누군지를 아는 그 믿음,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넘어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고뇌이고 힘들어도, 내가 감당하여야 하는 책임이나 사명에 자신이 없을때에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딸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면, 세상이 나를 다른 이름으로 칭하고, 판단해도, 우리는 낙하산을 버리고 허공으로 발을 한걸음 내딪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성도님 한분 한분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딸이다."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은 또한 나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에 감사하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고난 외모, 자질, 성향과 재능들을 말합니다. 자주 들으시는 통계지만, 청소년 8 명중의 한명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인들이 앓고 있는 병들중에 제일 많이 앓고 있는 병, 1 위가, “Clinical Depression”, 임상우울증 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세상이 들려주는 거짓된 채찍질, 비난, 자기비하, 열등감, 절망감 등,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과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흔들어놓는 거짓된 음성들을 믿고 있다는 것을 증거해줍니다. 사역을 하다보니 연령을 막론하고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내 자신을 “이모습 이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외모뿐 아니라 타고난 자질에도 만족치 못하고 낮은 자존감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재능을 사용치 못하고 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나 자신의 타고난 외모와 자질에 대해 만족하고 사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 마자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때부터 이런 음성들을 듣고 자랍니다. “이 얘기는 눈이 작다, 크다, 코가 낮다, 높다, 다리가 길다, 짧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향이나 자질에 대해서도, “운동을 잘한다, 못한다, 머리가 좋다, 나쁘다”등 나의 모습은 자주 비판당하고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님들 조차 아무 스스럼 없이, “얘는 당신을 닮아서 코가 이래, 당신을 닮아서 둔해, 당신을 닮아서 뭘 못해”라는 말을 하십니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듣고 자라면 내안에 신앙이 있다하더라도, 내 안에 낮은 자존감을 형성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사랑하신다는것을 알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매사에 자신이 없고, 내 모습에 만족치 못하며, 또한 쉽게 자신을 비판합니다. 저에게는 아주 미인인 여동생이 있습니다. '제 여동생이기 때문에 제 눈에는 예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태어났을때부터 “미스 코리아 감이다, 너무 예쁘다, 미인이다”등 사람들의 인기와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저의 아버지와 어머님의 잘생긴 부분만 닮아 태어났는지요. 반면에 저는 어렸을때부터 “부잣집 맏며느리깜이다. 인상좋다. 착하게 생겼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예쁘다는 것도 아니고, 못 생겼다는 것도 아닌, 이 ‘부잣집 맏며느리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어릴때 참 궁금해 했던것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잘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여동생과 언제나 외모에 대해 비교되며 자랐지만, 제가 성장하면서 세상의 기준으로 나의 외모를 판단할 줄 알게 된 후에도, 저는 이제까지 저의 모습에 대해 자신없어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라면서 지금까지 절대 여동생의 미모에 대해 질투하거나 시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수시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닙니다. 어릴때부터 나에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음성에 영향을 받아, 나의 외모에 불만족하거나, 동생의 미모에 시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게 된것은 제가 어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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