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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례 받지 않은 자
본문 에스겔 32:17~32:21
설교자 이근호 설교일 2014-05-07

할례 받지 않은 자

2014년 5월 7일                      본문 말씀: 에스겔 32:17-21



(32:17) 제십이년 어느 달 십오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32:18)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32:19)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고 너는 내려가서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지어다

(32:20) 그들이 살륙 당한 자 중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붙인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32:21)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사 전체를 다 포괄하시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요구를 가지고 성경을 봐서는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도리어 인간들의 사적인 요구들이 하나님의 전체 내용과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현실상은 전체를 다 포괄하는 하나님의 현실상과 같은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해하고 있는 현실이란 나와 내가 같이 만들어 나가는 현실관입니다. 따라서 나에게도 네가 필요하고 너에게도 내가 필요한 법입니다. 어지간한 큰 잘못이 아닌 이상, 세상은 서로를 용납해주고 감싸주고 관대합니다.

세상 만들기에서 서로의 지혜와 땀이 요구됩니다.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고 재주껏 분담해서 일을 처리해야 능률이 생겨서 원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이 세상과 현실에 대해서 인간들은 대단히 아낍니다. 이것이 바로 ‘동맹’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맹관계가 오늘 본문에서는 여지없이 하나님에 의해서 저주받게 됩니다.

즉 인간의 현실은 하나님의 현실에 의해서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신 현실은 무엇일까요? 천지창조 때부터 반(反)-작용이 작용하는 그런 현실이 생겨났습니다. 과학에서 우주의 창조를 137억년전  최초의 대폭발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아직도 폭발음에 해당되는 퍼져 나온 복사(輻射)파를 과학자들은 찾아내고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모든 우주는 여전히 최초의 폭발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 설명해보면, 하나님의 창조도 최초에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 원칙 안에는 반(反)-생명적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만들어진 모든 피조세계가 다 살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서 이미 ‘죽음’이 들어있어 같이 확장됩니다. 즉 살려고 하는 작용에는 반드시 그 작용을 죽음으로 데려가는 계기로 삼아버리는 반-작용도 같이 동반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보다 더 완전하게 살고 싶어 선악과 과실을 따먹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그 행위는 곧 ‘죽음’과 저주를 유발한 반(反)-작용을 유발시키게 됩니다. 따먹는 행위가 곧 죽는 행위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생각하신 현실에서는 인간들의 동맹을 무효화하고 죄악시하는 반-작용이 함께 작용합니다.

오늘 본문에 묘사되는 단어들은 사람들 끼리 이해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꾸려나가는 현실을 필요한 단어들입니다. 애곡, 애굽, 할례 없는 자, 음부, 살육당함이 이에 해당됩니다. 특히 ‘할례 없는 자’가 죽음의 세계에 집결해야 한다는 취지는 인간들이 현재 구상하는 현실이 얼마나 안일하고 내용없는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할례’란 몸에 새긴 언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신체에다 창조주의 약속을 문신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약속이란 말이나 서류 정도로 보관하는 법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민족에게만 몸의 직접 언약적 징후를 새깁니다. 이는 언약의 성취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몸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이 세상은 작용, 곧 인간의 작용과 하나님의 반-작용으로 조합된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살려고 하는 인간들의 행함은 그런 인간을 죽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반-작용으로 모든 것을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분노로 인해 멸망당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7:9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할례를 행한 자손들은 모두 살 수 있는 거룩한 백성됨을 말해주십니다. 할례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시술을 해주게 되지만 할례의 진정한 촤종 모습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 할례입니다. 골로새서 2: 11-12에 보면,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최종 상태에 도달하기 까지 할레 언약을 몸에 새기면서 살아야하는 이스라엘은 할례 언약이 가진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위험하고 난감한 죽음의 상화에 만나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2:30에 보면, 모든 애굽 나라 전체에 큰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이는 각 가정마다 장자가 죽는 죽음이 찾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예 하늘에게 죽음을 퍼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할례 행한 히브리인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란 그 언약이 품고 있는 바가 하나님의 심판에 속에서 살아남아 생명을 부여받는 은혜를 부여받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인간들의 살고자 하는 작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죽음이란 반-작용을 작렬하므로서 결과적인 인간들이 엉터리 현실관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반-작용한 것으로 정리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끝은 비참하게 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누가 예수님을 이렇게 함부로 대우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몸에 할례받았다고 자부하던 그들이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오해했습니다. 몸에 하나님의 사인sign, 곧 인印이 있는 자는 필히 생명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육의 한계, 즉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할례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인간에게 할례를 몸에 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것입니다. 몸의 한계는 곧 인간의 한계입니다. 언약의 완성은 인간이 자기 죄로 죽는 그 사건 안에서만 실현됩니다. 몸의 할례자로 죽고 마음의 할례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 사건 안에서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에게 행하신 그 할례만이 참 할례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몸을 그리스도 몸에 붙은 지체가 되어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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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32장 17절-21절입니다. 구약성경 1200페이지입니다.


에스겔 32:17-21


“제 십 이년 어느 달 십오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 고 너는 내려가서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찌어다 그들이 살륙 당한 자 중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붙인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찌어다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성경에서 현실을 묘사하는 것, 현실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은 KBS나 MBC에서 현실을 표현하는 것과는 용어자체가 달라요. 신문지상에서나 방송에서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유엔사무총장이 어떻고, 북한이 어떻고, 검찰총장이 어떻고, 대통령이 어떻고, 이렇게 특정 개개인의 인물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거든요. 이번 일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런 식으로. 그런데 성경에서 묘사하는 표현방법은 특정개인이 아니고 이 세상은 하나님이 생각한 집단과 하나님의 버림받기로 한 집단 사이의 암투, 투쟁, 전쟁, 싸움, 그런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볼 때에 성경을 사적으로 보게 되면 이 용어 자체가 안 맞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성경은 무슨 내용인가?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내용을 덩어리 채로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여러분, 전부를 아는 것이 좋습니까, 일부를 아는 것이 좋습니까? 전부를 한꺼번에 통째로 아는 게 좋아요. 조금의 부분을 알아버리면 그것가지고 다음 사태가 될 때는 써먹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전체를 알아버리면 내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미 해답을 다 가진 사람으로서의 넉넉함과 그 자신감과 자유함, 해방감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런 식이지요.


성경 전체를 한꺼번에 내용을 알게 되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성경대로 되는 거야.’ 이렇게 여유 만만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마치 토정비결 보듯이 내년에는 어떻게, 올해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해버리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현실은 전체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성경 보면서 자기 자신이 전체인줄 알고 오해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전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다루시는 한 프로젝트의 일부를 맡은 겁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핸들을 꽂는 작업반장이 몸이 안 좋다 하면 ‘내가 몸이 아파 핸들 꽂을 사람이 없으니 현대자동차는 이제 자동차 다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반장님이 아픕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대체해서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전체적으로 하는 일에 나 없어도 하나님의 일은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만약에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다 죽었다. ‘이제 하나님은 일 다 했다.’ 그러면 안 되지요.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되니까. 이것이 제가 지금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도 여기에 동의를 할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동의를 하는데 막상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살아보면 하나님마저 내 중심이 되는 것으로 오인하면서 매일 살아가고 있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전체를 다루시는데 우리는 그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나 위주로만 모든 것이 돌아가야 하나님다운 것처럼 우리 쪽에서 자꾸 오해를 유발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성경 안보고도 뜻을 안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되고요. 성경 안 보고 안다는 것은 지금 자기가 편하다는 뜻이거든요. 성경을 보게 되면 편하고 안 편하고 간에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밀어붙입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 중에 욥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욥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난 뒤에 고생 되게 했습니다. 욥은 짜증났지요. 자기보다 죄지은 사람은 멀쩡한데 남보다 착한 자기에게는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주니까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고난을 받습니까?”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이 직접 욥에게 찾아와 보니까 욥이 당한 고난은 장차오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님이 당할 고난을 미리 앞당겨서 참여하는 자로서,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중에 오지만 욥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라고 그렇게 고난을 먼저 준 겁니다.


이것은 욥에게 이익이냐 손해인가를 따지면 안돼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그렇게 쓰셨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욥을 쓰시니까 진짜 하나님이 장차 오시는 것과 진짜 하나님이 고난주시는 것을 아는 것이고 다른 친구들은 입만 하나님이지 전혀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지요. 그래서 욥은 알지요. “아하, 전체를 봐야 되겠구나. 나에게 힘든 일 생겼다고 ‘하나님 싫어요.’ 그러면 안 되고 하나님의 그 엄청난, 측량할 수 없는 넓을 뜻이라는 것을 이론상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활 가운데서 아주 절실하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조치를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표현하는 현실은 오늘 본문 내용을 보게 되면 이렇습니다. 애굽 나오고, 여자들 나오고, 지하 나오고, 특히 할례 받지 않는 자 나오고, 음부 나오고, 음부는 죽음이니까 죽음이 나오고. 이게 하나님께서 현실을 묘사하는 용어들이에요. 다시 할까요? 애곡하는 애굽, 애굽 나오고, 18절에 여자가 나오고, 19절에 할례 받지 않은 자 나오고, 그 다음에 음부가 나오고, 살육당한 자, 이렇게 나온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KBS, MBC뉴스에 나오지 않는 용어들, 다시 말해서 지하, 죽음의 세계인 음부, 할례 받지 않는 자, 이걸 모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이야기하는 현실이 어떤 현실인지 아주 모르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가 이 시간에 할 일은 간단한 겁니다. 하나님이 현실을 묘사할 때,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현실이 무엇이냐 할 때 여기에 나오는 용어가 할례 받지 않은 자, 음부, 여자, 지하, 이런 개념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묘사하려는 그 현실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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