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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신도의 모험
본문 베드로전서 2:9~2:9
설교자 정경일 설교일 2014-05-11
평신도의 모험

(베드로전서 2:9)

정경일 형제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2장 9절

 

 

 

평신도의 특권

 

저는 평신도입니다. 하지만 저를 목사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했고 여러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으니 당연히 지금은 목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사가 아니라고 하면 의아해합니다. 그리고는 이제라도 어서 목사가 되라고 충고해 줍니다. 그래야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나 이웃종교의 성직자들을 만날 때 평신도라고 하면 살짝 무시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조금 불편하고 불리하긴 해도, 저는 목사가 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도 목사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목사가 될 때 얻는 편리함과 유리함이 도리어 유혹과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직자 권위주의’의 제도화와 내면화입니다.

 

198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자로 ‘계급철폐'를 위해 싸우다 1990년대에 신학생이 된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성직 계급’의 권위주의였습니다. 지난 주일 서진한 목사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위계적 계급 관계로 보는 관점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목사들이 인생의 한참 선배들을 평신도라는 이유만으로 ‘양떼’라고 부르거나 ‘영적 아이’ 취급합니다. 강단에서 대놓고 반말을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평신도들 스스로 순한 양처럼 성직자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한다는 사실입니다. 겨우 이십 대 중반의 목사후보생(전도사)이었던 저도 하나님과 목사님 다음의 ‘넘버 3’ 정도의 대접을 받곤 했습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목사의길을 포기했던 것은 저도 성직자 권위주의의 제도와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지 않은 것이 반드시 특권을 포기한 것만은 아닙니다. 성직자의 특권은 족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는 제도교회가 주는 편리하고 유리한 조건을 얻는 대가로 제도교회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그 틀을 벗어나게 되면 불이익과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양 같은 평신도들도 자기들이 기대하고 원하는것을 목자인 성직자가 채워주지 못하면 가차없이 목자를 공격합니다. 위로는 교회 권력의 요구를 아래로는 평신도의 욕망을 모두 채워줘야 하니 성직자도 괴롭습니다.

 

사실 ‘성직자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보다 ‘평신도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 제게는 더 어려웠습니다. 제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평신도의 특권은 영적 모험을 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성직자는 영적 모험가이기보다는 종교적 전통의 수호자입니다.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성직자는 전통적 교리, 의례, 규칙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자연히 전통에 도전하거나 전통 밖으로 나가는 영적 모험을 두려워하고 위험시합니다.

 

반면 전통이 주는 특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평신도는 영적 모험을 덜 두려워합니다. 역사적으로 급진적인 영적 모험을 감행했던 이들도 대부분 평신도였습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만 보더라도, 붓다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아닌 전사 계급인크샤트리아 출신의 수행자였고, 예수도 성전이나 회당의 사제가 아닌 평신도 예언자였습니다. 물론 역사적 불교와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적 분리가 오랫동안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종교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현대 사회에서 평신도의 영적 모험은 더 자유로워지고 풍요로워졌습니다. 평신도 모험가들이 세운 새길도 그런 현대적 종교성의 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새길교회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열어 온 신학강좌와 기획토론 제목 몇 개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웃종교에서 보는한국 기독교,” “종교다원주의와 영성,” “불교와 그리스도교,”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과학과 종교,” “기후붕괴 시대, 신학을 재구성하다,” “4대강 사업,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이는가?” “종북 논쟁의 허와 실,” “한반도 평화,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한국교회와 성적 소수자,” “원자력 발전 대안은 없는가?” 모두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관련된 주제들입니다. 이런 현대적문제들과 이토록 정직하고 치열하게 씨름할 수 있는 제도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새길이 성직자 중심의 제도교회였다면그런 영적 모험은 힘들었을 겁니다.

 

‘평신도 제도의 폐지’

 

물론 모든 평신도가 영적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다수의 평신도는 영적 모험을 기피하고 제도교회 안에 머물며 자발적으로 성직자에게 순종합니다. 그것이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대가로 그들은 성직자가 제공하는 영적서비스를 받습니다. 목회적 돌봄이라 해서, 목자인 성직자가 양인 평신도의 사사로운 애경사까지 챙겨 주고, 고민도 상담해 주고, 상한 마음도 위로해 줍니다. 심지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의 윤리적, 정치적 삶의 방식까지도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애정남’처럼 성직자가 정해줍니다.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편리하고 안전합니다.

 

오늘의 평신도는 비판적 사유 능력과 주체적 행위 능력을 잃어버리고 성직자를 무조건 믿고 따릅니다. 성직자들이 횡령, 교회세습, 성범죄, 폭행, 논문표절 등 온갖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양들’은 흔들림 없이 ‘목자’를 옹호합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어 사회와 민족의 화해를 선도해야 할 교회의 성직자들이 낡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증오를 부추겨도 평신도들은 ‘아멘’ 하며 지지합니다. 성직자들이 과거의 독재자를 추모하며, 아니 숭배하며, “한국은 독재를 해야&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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