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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굴복하기 않는다
본문 로마서 6:8~6:14
설교자 김기석 설교일 2014-05-25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롬6:8-14
(2014/5/25,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 진실을 찾아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감리교회를 시작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회심 27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회심이라 하면 탕자처럼 살던 삶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돌아선 것으로 보통 이해를 하지만 웨슬리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18세기 전반에 걸친 그의 삶은 시종일관 반듯했습니다.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성직자의 길을 걸었고, 죽는 순간까지 치열한 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입니다. 산업혁명기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열정 속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감리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은 웨슬리의 회심 사건을 풍월로라도 들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교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많은 분들을 기억하며 저는 간단하게 웨슬리의 회심 사건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옥스포드 시절 웨슬리는 친한 신앙의 벗들과 어울려 함께 진리 공부에 매진했고, 거룩한 삶을 모색했습니다. 젊은 악동들은 늘 정해진 시간에 모여 희랍어 성경을 읽고, 고전을 읽고,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을 조롱하기 위해 '메소디스트methodist'라는 조롱조의 별명을 붙였습니다. '형식주의자 혹은 규칙주의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거룩한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옥스포드에서의 긴 수련 기간을 거친 존 웨슬리는 자기 신학을 적용할 곳을 모색하던 중 북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1735년 그러니까 그가 32살이 되던 해에 북미의 조지아 주에 선교사로 가게 됩니다.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무려 57일이 걸렸습니다. 그는 그 배 안에서 자기 인생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입니다. 그들은 체코의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는데, 신앙의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라는 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거친 풍랑을 만나 배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모라비안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심지어 찬송을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광경은 웨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웨슬리의 북미 선교는 한 마디로 말해 실패였습니다. 옥스포드라는 온실 속에서 살아온 웨슬리의 신학은 식민지의 현실이라는 광야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했습니다. 그에게 쓰라림만을 안겨준 조지아 선교를 평가하면서 그는 자신의 불신과 무능만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 위험이 없을 때는 복음도 잘 전하고 괜찮은 믿음의 소유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죽음의 두려움에 직면해서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떨며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라'는 고백을 감히 하지 못한다."(<일기, 1738년 1월 24일 자, 김동환의 <'목사 웨슬리'에게 목회를 묻다> p.67에서 재인용)

• 은혜의 시간은 다가온다
어쩌면 이게 제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그의 열정, 지성,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환멸로 변했습니다. 웨슬리는 조지아를 떠나 1738년 2월 1일에 영국의 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자기에 대한 환멸에 사로잡혔다고는 했지만 진리를 향한 그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신학을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다가옵니다. 웨슬리는 그해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에 일어난 한 사건을 일기 속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어느 집회소에서 열린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낭독하고 있었습니다. 한 리더가 일어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그 때 웨슬리는 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고백합니다. 불에 데인 듯 화끈한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생명은 바로 그런 따뜻함 속에서 탄생하는 법입니다.

"나는 그 순간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신뢰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앞의 책, 77쪽)

드라마틱한 회심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에는 복음의 씨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발아하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그의 '지성'과 '정성'과 '열정'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실에 꿰인 바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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