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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만히 있지 않기
본문 사도행전 17:22~17:31
베드로전서 3:13~3:17
설교자 고상진 설교일 2014-05-30

본문: 사도행전 17:22~31/ 베드로전서 3:13~17/ 요한복음 14:15~21

여는 찬송 65장/ 응답찬송 517장/ 결단찬송 국악189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향린의 모든 여러분!)

한 주간, 아니 두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함께 하늘뜻을 모시기에 앞서 지난 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리며, 함께 마음모아 염려해 주신 덕분에 저를 포함한 8명이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된 점에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도 안 되는 해산명령, 그럼에도 순순히 해산하기 위해 인도위로 올라선 시민들을 대한 체포, 연행자들에 대한 비하와 폭언, 그리고 연행된 여성들에 대해 자살방지를 명분으로 속옷을 벗기고 압수하는 등의 모욕적 행위 등 이어지는 경찰의 불법적, 반인권적 행위는 저로 하여금 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위!기!.......서민생계의 파탄과 그에 따라 이어지는 비극적 희생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과 수많은 노동문제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 개발 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파괴되어도 무방한 생명과 생태적 가치, 그리고 지난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눈물과 핏방울로 진전시켜 온 절차적 민주주의의 총 후퇴 등, 지금 한국사회는 도무지 위기가 아닌 곳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위기의 단면이었던 그날 밤, 불과 백여 명의 시민을 잡아들이겠다고 헬멧 흑광 번뜩이며 달려들던 수천의 공권력, 계속해서 ‘순순히 체포에 응하라! 시키는 대로 해라! 가만히 있어라!’를 요구하는 그들을 보며 저는 오늘의 본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위에서)

먼저 사도행전의 오늘단락은 저 유명한 아레오파고스 법정연설 장면입니다. 내용 중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선교영역을 넓힌 바울로는 아테네에서, 초기 예수공동체의 주요거점인 회당의 유대인 뿐 아니라 저자거리와 연해 있는 아고라 즉 광장에서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은 그 학자들이 “당신의 그 새로운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줄 수 없겠소?”라며, 바울로를 아레오파고스 법정으로 청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세상 어느 곳의 법정이 무언가 모르는 것을 청해 듣기위해 열린단 말입니까? 고대 아테네의 법정은 지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기관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법정이라는 번역이 틀린 것일까요?

아레오파고스, 기실 이곳은 지금으로 치자면 약식기소나 즉결심판을 행했던 법정으로 일심제 재판을 통해 잡범들에 대한 벌금과 간단한 태형, 혹은 경우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추방명령 등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섰던 법정은 사도행전의 묘사처럼 무언가 알려주는 선생의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왜 이 장면을 왜곡했던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은 예수공동체의 행적에 대한 변론목적의 글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에 따라 내용도 무척 이상적인 장면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한 번 연설로 삼천 명이 개종했다는 내용은 그 대표적 예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사도행전은 베드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 등 예루살렘 중심의 초기 예수 공동체보다는 유럽지역 디아스포라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기술되어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유럽 선교의 핵심인물인 바울로를 법정에 끌려간 잡범으로 묘사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바울로의 아레오파고스 연설은 연단에 선 강사의 강연이 아닌, 법정에 선 피의자가 자신을 변호하려 했던 변증발언임에 분명합니다.

 

저는 대학원석사과정동안 지중해 동부지역의 초기기독교 공동체 유적 답사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레오파고스 유적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곳은 파르테논 신전으로 잘 알려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연해있는 큰 바위언덕입니다. 이곳에 서면 뒤로는 파르테논 신전, 앞으로는 고대 아테네 항구 유적을 볼 수 있고, 오른편의 아고라 유적과 왼편의 제우스 신전터의 위용도 살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모든 유적들이 오스만투르크 등에게 오랜 시간 지배를 받는 동안 파괴되어 폐허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저는 동서남북의 그 압도적 풍광에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 속 바로 그 당시의 역사적 바울로는 어떠했을까요? 고대 지중해 문명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아테네, 게다가 고대 유럽의 사변철학과 인문학에 있어 그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혈혈단신 예수의 도를 전하던 바울로는 급기야 이단논설자로 지목되어, 아고라에서 그를 고발한 군중들에 붙잡혀 바람 부는 아레오파고스 언덕 한중간에 세워졌습니다. 상황에 따라 선교는커녕 매질을 당하거나 심지어 다시는 아테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바울로는 다른 지역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역사적 연설을 남깁니다. “제가 보았을 때 당신들은 무척 신심(信心)이 깊은 분들임에 분명합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사원도 있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제가 전하고 있는 신앙은 바로 당신들이 이미 경배하는 있는 그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것입니다.” 이웃종교와의 실로 대담한 지평융합을 시도하는 바울로의 이 연설은 앞서 설명 드렸던 위기상황에서 자신을 구출해냈을 뿐 아니라, 해당 법정의 법정 판사를 포함한 몇 명의 개종자를 얻는 성과를 이끌어내기에 이릅니다. 눈앞에 직면한 위기상황 속에서 만약 바울로가 기세등등한 군중이나 압도적 건축물들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면 역사적 아테네 선교활동도, 혹은 그 이후 지중해 지역의 예수공동체 운동의 향배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오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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